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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144) 역려과객(逆旅過客) 유성인연(流星因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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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5-09-09 11:34 조회 3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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逆旅過客(역려과객)은 ‘세상은 여관과 같고, 인생은 그곳에 잠시 머무는 나그네와 같다'란 뜻으로 인생의 무상함과 덧없음을 표현한 성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만남을 갖고, 그중에서도 별똥별처럼 짧지만 오래 기억되는 만남의 ’인연‘은 그런 덧없는 인생을 윤택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향기일 것이다. (사진=인터넷 캡처/ 이형로)
逆旅過客(역려과객)은 ‘세상은 여관과 같고, 인생은 그곳에 잠시 머무는 나그네와 같다'란 뜻으로 인생의 무상함과 덧없음을 표현한 성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만남을 갖고, 그중에서도 별똥별처럼 짧지만 오래 기억되는 만남의 ’인연‘은 그런 덧없는 인생을 윤택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향기일 것이다. (사진=인터넷 캡처/ 이형로)

필자가 13년 전 덕수궁에서 근무를 시작할 때 관람객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몇 해가 지나자 국내인은 물론, 'K-컬쳐'가 세계에 알려지며 외국인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하루에 수천 또는 수만 명(설•추석연휴 경우)이 들어왔을 때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이제는 내가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구경하는거야'라고 생각을 바꾸니, 관람객들이 많아도 즐기게 되었다. 

그동안 밤하늘의 뭇별만큼이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지금도 만나고 있다. 그 가운데는 밤하늘의 별똥별처럼 잠깐의 만남이지만 잊혀지지 않는 이도 있고, 그 잠깐의 만남이 아름다운 인연으로 계속되는 이들도 있다. 이렇게 '밤하늘의 은하수만큼이나 수많은 아름다운 만남'을 '은하수연(銀河秀緣)'이라 한다. 

모란꽃이 피기 시작한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다. 장우산을 지팡이 삼아 함녕전 꽃계단을 오르려는 나이 든 숙녀를 만났다.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힘들어 보여 손을 잡고 정관헌에 오르며 어떻게 혼자 오셨냐니까, 요양원에 있는 친구들에게 모란꽃 사진을 찍어 보여주려고 분당에서 일부러 오셨단다. 

덕수궁에 모란이 있는지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이미 고인이 된 남편과 연애할 때 와봐서 알고있다며 아련한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함녕전 꽃계단에 활짝 핀 모란은 이미 다 찍고 석조전 앞에도 모란이 있다길래 가는 중이라 한다. 

신라 선덕여왕과 모란에 얽힌 얘기(칼-137참조)를 재미있게 해드리며 석조전에 이르자, 마침 은은한 모란향이 바람결에 실려왔다. "아, 모란에도 진짜 향이 있네요?"라며 핸드폰을 바로 꺼내들었다. 

나이든 숙녀가 주민센터에서 배운 기술을 맘껏 발휘하는 모습이 필자의 눈에는 소녀처럼 귀엽게 보였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연세가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그러자 방긋 웃고는 "숙녀의 나이는 함부로 묻는게 아닌데..."라며 올해 97살이란다. 잘못 들었나 의심하며 몇번인가 확인했다. 연로한 숙녀의 환하게 웃는 모습 속에는 앳된 소녀가 함께하고 있었다. 

내년 3월에 석어당 살구꽃을 꼭 보려온다며 손가락까지 걸고 돌아서는 노(老) 숙녀의 뒷모습에서 엄니가 보였다. 올해로 만30년 전에 떠난 엄니가 계셨다면 저 숙녀와 동갑이다. 다음해 왔다가셨는지 그후론 보지 못했다. 밤하늘의 별똥별만큼이나 짧은 만남이었지만,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다. 

萍水相逢(평수상봉)은 ‘물에 떠다니는 부평초가 우연히 서로 만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여행중에 우연히 만나는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우리네 인생 여정중에 이처럼 뜻밖의 만남이 소중한 인연으로 남아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사진=인터넷 캡처/ 이형로)
萍水相逢(평수상봉)은 ‘물에 떠다니는 부평초가 우연히 서로 만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여행중에 우연히 만나는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우리네 인생 여정중에 이처럼 뜻밖의 만남이 소중한 인연으로 남아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사진=인터넷 캡처/ 이형로)

어느해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3월 마지막 수요일, 이날은 석조전 음악회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음악회는 오후 7시에 시작하는데, 예약을 받아 6시50분까지 입장을 해야한다. 

7시3분쯤인가 늘씬한 아가씨가 트렌치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러나 석조전 문은 이미 닫혀 있었다. 마침 문 밖에서 정리하고 있던 나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아가씨다. 규정상 어쩔 수 없다하니 모처럼 봄을 느끼려 예약까지 하고왔는데 아쉽다며 발걸음을 뗀다. 

이날의 레퍼토리는 쇼팽의 녹턴, 모차르트의 플룻 4중주와 플룻과 하프를 위한 협주곡이었다. 모두 새봄과 어울리는 플룻 명곡이다. 아쉬워 돌아서는 그녀의 뒷꼭지에 대고 이왕 왔으니 진달래꽃이나 보고 가라고 했다. 

잠시 후 잘생긴 청년이 역시 트렌치코트를 휘날리며 뛰어왔다. 그 역시 아쉬워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순간 두 청춘 남녀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과 함께 장난끼가 발동됐다. 같은 처지의 저 아가씨와 덕수궁 꽃구경이나 하고 가라고 하자, 청년은 고개 인사를 하며 잰걸음으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멀리서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을 끝으로 그날의 기억은 지워졌다. 

그리고 2년이 지나 진달래가 만발하던 어느 날 두 남녀가 찾아왔다. 그동안 열심히 사랑하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내년 5월에 결혼할 예정이란다. 가끔 필자 얘길하다가 오늘 말나온 김에 찾아뵈려고 왔단다.  

귀여운 장난기가 발동한 월하노인(月下老人) 덕분에 좋은 사람 만나게 되어 고맙단다. 부부가 될 인연은 보이지 않는 '붉은 실'로 연결이 되어있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만날 사람은 만나고, 인연이 없으면 비록 코앞에 있어도 만나지 못한다는 전설을 얘기해 주었다.(칼럼 140 참고) 

살구꽃이 피면 꼭 찾아와 석 잔의 술을 대접하겠다는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봄은 언제나 아름답고, 청춘들은 어여쁘다. 그런데 ‘이 사람들아, 술 석 잔으로 되겠어?’

십 년을 매일 우리 덕수궁으로 산책나오던 노 수녀님이 요즘 안보여서, 마침 산책나온 젊은 수녀에게 안부를 물었다. "아, 오 수녀님요? 최근 영국 가셨다가 어제 오셨어요.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바쁘세요." 유명하다고?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해봤다. 노수녀님의 성도 이름도 모르다가, 젊은 수녀가 '노수녀님'을 '오 수녀님'으로 잘못들은 덕분이었다. 

며칠 후 산책나온 노수녀님이 반가워 젊은 수녀님 덕분에 수녀님이 어떤 분인가 알게됐다고 하자, "제가 제법 유명한가봐요. 인터넷 검색하면 나온다네요." 해맑게 웃으며 늘 하던대로 가방에서 사탕 하나 꺼내 주셨다. 나도 늘 하던대로 받아서 바로 입속에 넣었다. 

수녀 '오 카타리나'는 환갑인 2006년에 우리나라 성공회에서 최초로 수녀에서 사제로 서품받았다. 우리나라에선 지금까지 신학을 전공한 여성 아홉 명 정도 사제가 된 적은 있지만, 수녀에서 사제로 변신한 것은 그가 최초다. 전 세계적으로도 수녀가 사제가 된 경우는 10여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는 10살 한국전쟁 때 2살 터울의 여동생과 졸지에 전쟁고아가 돼 1•4후퇴 당시 수원으로 갔다. 갈 곳이 없어 찾아간 곳이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이었다. 그가 수녀원에 입회한 것은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한 해인 1964년 봄이었다. 그후 성공회대 영문과에서 학생을 가르치다가, 성가수녀원에서 원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덕수궁 곁에 있는 성공회 주교좌성당 뒤 '비밀의 정원'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사람을 만나면 무슨 얘기든 나누고 싶어서 먼저 아는 체하고 다가서는 그다. 오늘은 무얼 했으며, 내일은 무엇을 할 것이라는 등 일상의 소소한 얘기를 하면서도 입가에는 소녀의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참 곱게 늙었다. 오늘은 비가 이렇게 오는데 산책나오시려나, 달달한 사탕이 생각나는데. 

이태백은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란 글 첫머리에서 '夫天地者 萬物之逆旅 光陰者 百代之過客, 부천지자 만물지역려 광음자 백대지과객, 무릇 이 세상은 만물이 잠시 머물다 가는 여각이요, 시간은 긴 세월에 잠시 스치는 나그네와 같다)‘고 했다. 이 구절에서 '세상은 여관과 같고, 인생은 그곳에 잠시 머무는 나그네와 같다'란 뜻의 '역려과객(逆旅過客)'이란 성어가 유래한다. 

그렇다. 우리들은 모두 한없는 시공(時空) 속으로 길 떠난 나그네들이다. 이 여행길에서 많은 사람들과 조우하기도 한다. 이를 당나라의  왕발(王勃, 647~674)은 '등왕각서(騰王閣序)'에서 '물에 떠다니는 부평초가 우연히 서로 만나는 것과 같다'는 뜻의 '평수상봉(萍水相逢)'이란 말로 표현했다.

비록 별똥별만큼이나 짧은 만남일지라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인상적인 인연도 있다. 필자는 이를 '별똥별 같이 짧은 만남'이란 뜻의 '유성인연(流星因緣)'이라 이름한다. 이렇듯 우리네 삶은 은하수만큼 무수한 만남과 그 가운데 별똥별처럼 짧은 만남으로도 충분히 윤택하고 아름다워질 수가 있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최근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이야기' 1~9권을 잇따라 펴냈으며 현재 10권을 준비중이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출처 : 인사이드비나(http://www.insidevi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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