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145) 여론조작(輿論造作), 채시지관(采詩之官) > 뉴스언론 | 위벳
본문 바로가기

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145) 여론조작(輿論造作), 채시지관(采詩之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5-09-22 11:30 조회 40 댓글 0

본문

채시지관은 중국 주나라때 백성들의 민요를 채집해서 조정에 보고하는 관직으로 노랫말을 통해 여론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여론조사는 간편하고 효율적이지만 왜곡의 위험성이 있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풍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여론조사보다 민의를 더 정확히 파악하는 길일 수 있다. (사진=인터넥 캡처/ 이형로)
채시지관은 중국 주나라때 백성들의 민요를 채집해서 조정에 보고하는 관직으로 노랫말을 통해 여론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여론조사는 간편하고 효율적이지만 왜곡의 위험성이 있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풍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여론조사보다 민의를 더 정확히 파악하는 길일 수 있다. (사진=인터넥 캡처/ 이형로)

지난 제20대 대통령 선거와 2022년 6월 보궐선거,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 정치브로커 의 공천개입과 불법 여론조사 및 여론조작 의혹 등 소위 '명태균 게이트'가 핫 뉴스가 됐던 적이 있고, 지금도 수사가 진행중이다. 

여론조작(輿論造作, Media manipulation)이란 방송 등 대중 커뮤니케이션이나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의 독특한 특징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오도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자신의 이익과 의제를 추진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조직적인 캠페인을 말한다. 

특히 총선이나 대선 등이 치러질 때 여론조사 결과는 매일 조사기관마다 각각 다르고, 심지어는 동일한 기관에서 발표하는 조사 결과도 수시로 다르게 나타나서, 후보자인 정치인들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혼란을 주어 여론조사 자체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은 조사방법과 표본추출 프레임, 질문방법, 설문항목의 배치 순서, 설문항목의 어휘 선택 등이다. 

국내 여론조사의 대부분은 전화조사와 ARS조사가 사용된다. 개별면접조사가 사용되기도 하지만 흔한 방법은 아니다. 전화조사나 ARS의 방법 차이는 응답률의 차이로 이어지며, 응답자의 정치적•사회적 차이로 조사결과의 차이로까지 연결된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시민의 대표가 개인이나 특정 집단•지역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등장한 개념이 여론의 수렴이었다. 조지 갤럽(George H. Gallup, 1901~1984)은 여론조사를 이러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직접민주주의의 수단이라고 했다. 

그러나 여론조사는 이슈의 쟁점도 모른 채 그저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응답하는 표피적인 의사표현이 될 수가 있다. 이런 폐단의 보완재로 떠오른 방법이 제임스 피시킨(James S. Fishkin)의 '공론조사'(公論調査, Deliberative Polling)다. 이는 과학적 표본추출에 의한 여론조사에 참여자들의 학습과 토론을 결합한 조사기법이다. 

예를 들면, 원전과 사용후핵처리 문제와 같은 민감한 사안의 경우 시민은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 국외자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공론조사를 벌이면 시민대표는 찬반 양측의 토론을 지켜보고, 균형잡힌 자료를 면밀히 검토한 후 사회적인 합의를 도출하게 된다. 참여하지 않은 시민들도 TV생중계를 통해 양측의 논리를 이해할 수가 있다. 

세종대왕은 공법(貢法, 세금) 제도에 대해 현대에서도 실행하기 어려운 대면 여론조사를 실시, 그 결과를 놓고 신료들과 공론을 벌인후 세밀하게 다듬어 실시했다.(사진=인터넷 캡처/ 이형로)
세종대왕은 공법(貢法, 세금) 제도에 대해 현대에서도 실행하기 어려운 대면 여론조사를 실시, 그 결과를 놓고 신료들과 공론을 벌인후 세밀하게 다듬어 실시했다.(사진=인터넷 캡처/ 이형로)

찬성 57.1%, 반대 42.9%. 이는 1430년(세종 12년) 3월5일 세종대왕이 전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하여 당시 인구의 4분의 1인 17만2806명인 57.1%가 찬성한 결과다. 호조가 '전답 1결당 조10두 징수'를 골자로한 공법(貢法, 세금) 방안을 제출하자 세종이 전국적인 여론조사를 지시한 결과였다. 

세종은 전국의 전•현직 관리는 물론이고 세민(細民, 가난한 일반백성)들에게까지 가부를 묻도록 했다. 현대에서도 실행하기 어려운 가히 혁명적인 전국민 대상의 '면대면 여론조사'를 지시한 것이다. 

이 최초의 여론조사에는 무려 5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 결과 경기•전라•경상 3도에서는 99%의 찬성 몰표가 나왔고, 충청과 황해도의 찬성율은 10~30%, 특히 국경지대이며 땅이 척박한 평안•함길도는 1~4%만이 공법에 찬성했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신료들은 공법이 부자에게는 다행이고 백성에게는 불행이며, 여론조사 결과가 조작되었을 가능성까지 있다며 거세게 반대했다. 세종은 장시간 신료들과 공론을 벌인 후에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 

1443년(세종 25년) 10월27일 경상•전라 양도의 백성 중 공법 시행을 희망하는 자가 3분의 2가 되면 우선 이 양도에서 시행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국민투표라 할 수 있는 여론조사를 실시한 왕조시대 군주가 현대에도 시행하기 어렵다는 3분의 2의 다수결 원칙까지 천명했다. 그후 신료들과 함께 공법을 세밀하게 다듬어 1444년(세종 26년) 마침내 전면 실시하게 된다. 

 여말선초까지는 '답험손실법'이라는 세법으로 '논 1결에 조 30두, 밭 1결에 잡곡 30두'로 책정했다. 추수기에 관리들이 현장조사를 통해 작황의 등급을 매기고(踏驗 답험), 그 등급에 따라 적당한 비율로 조세를 감면(損失 손실)해 주었다. 

담험손실법이 제대로 작동만 된다면 이 보다 더 좋은 제도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전적으로 조사관의 능력과 인품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전문성을 겸비한 청렴한 관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문제인 건 마찬가지다. 이에 반해 공법은 해마다 일정량의 곡물을 거두는 정액제 세금이다. 세종도 답험손실법이 아름다운 법이라 칭송했지만, 그것이 제대로 작동될 때 얘기다. 

어느 해는 예년에 비해 작황이 좋았지만 세수가 오히려 줄어든 경우가 있었다. 이는 현지 수령들의 현지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세금이 새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고 직접 농사를 짓는 백성들에게 이익이 돌아가지도 않았다. 백성들은 세금보다 더한 접대비용과 뇌물을 부담했기 때문이었다. 

흔히들 세종대왕의 업적을 들라면 한글창제를 첫손으로 꼽고, 대마도 정벌, 4군6진 개척, 자격루 등 과학기술의 발명, 조선 풍토에 맞는 농사직설 편찬, 한성을 기준으로 한 역법인 칠정산 편찬 등을 열거한다. 이러한 업적 가운데 전 백성을 대상으로 여론조사까지 해서 만든 조세제도인 공법의 확립을 빼놓을 수 없다. 

조선의 최고 번영기라는 영•정조 시대에는 역설적이게도 다른 어느 시기보다 체제 전복을 꾀하는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온라인 댓글은 없었지만, 거짓 소문을 퍼뜨려 여론을 호도하는 방법이 몇 가지 있었다. 가장 널리 쓰인 방법은 익명으로 글을 써서 시장처럼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 붙여 소문이 퍼지도록 하는 '괘서(掛書)'였다. 

괘서의 정확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괘서의 대상이 주로 고위 관료나 임금이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과격한 내용 특히 임금에 대한 내용은 차마 그대로 옮길 수 없기 때문에 왕조실록에서는 '흉언(凶言)'이란 말로 대체되었다. 전근대사회에서 괘서의 위력은 지금의 가짜뉴스나 여론조작 못지 않게 파급력이 대단했다. 

여론조사는 효율적이고 간편하다는 이유로 정치인들에게 과도한 사랑을 받는 반면에 미움도 받고 있다. 숫자로 요약된 결과는 쉽게 이해되고 전략적 활용도 용이하다. 그러나 여론조사는 순간적인 선호만을 반영할뿐 국민의 깊은 가치관이나 장기적인 비전은 담아내지 못한다.     

훌륭한 정치지도자라면 공론과 대중정서인 여론 사이에서 긴장감있게 균형을 잡아가야 한다. 지도자는 단순히 숫자만을 좇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방향성을 읽고 시대적 과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끝으로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채시관(采詩官)' 한 구절을 붙여 본다. '채시지관(采詩之官)' 즉 채시관이란 주나라때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노래 가사인 시를 채집하여 중앙정부에 보고하는 관직이다. 백성들의 노래인 민요를 통해 당시 정치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인 여론을 듣자는 취지였다. 

'君兮君兮願聽此 欲開壅蔽達人情 先向歌詩求諷刺, 군혜군혜원청차 욕개옹폐달인정 선향가시구풍자, 임금이여 임금이시여 이내 말씀 좀 들어 보소/ 눈귀 가린 것을 걷어내고 사람들 마음을 알고 싶거든/ 먼저 사람들의 노래와 시에 들어 있는 풍자를 찾아보시구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최근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이야기' 1~9권을 잇따라 펴냈으며 현재 10권을 준비중이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출처 : 인사이드비나(http://www.insidevina.com)
  • ▲ 이전글
  • 작성 : 운영자
  • 제목 : 빈패스트 도시형 CUV ‘VF5’, 8월까지 2.7만대 판매…경쟁3社 합산치보다 4배 많아
  • ▼ 다음글
  • 작성 : 운영자
  • 제목 : 베트남, ‘최고세율 35%’ 소득세 개편 요구 확산…동남아 최고 수준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RVIE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