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135) 만화방창(萬化方暢) 흥진비래(興盡悲來) 일수백확(一樹百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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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5-04-14 11:29 조회 100 댓글 0본문
- 나무 한그루 심어 백가지 이익 보듯, 인재 하나 길러 여러 효과 얻을 수 있기를

우리 꽃대궐 덕수궁에 벚꽃이 만발하더니 수수꽃다리와 산철쭉도 하나둘 얼굴을 내밀고 있다. 바야흐로 온갖 생물과 꽃들이 서로 다투어 흐드러지는 만화방창(萬化方暢) 좋은 계절이다.
얼마전 숭례문에 근무하는 필자의 독자이자 글친구가 그곳에는 화사한 봄꽃은 없고 돌틈에 돌단풍밖에 없어 아쉽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그래도 사방으로 자동차가 다니는 도심의 섬같은 곳에 돌단풍이나마 꽃을 피우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자세히 살피면 그곳에도 민들레•좁쌀냉이•꽃마리 등이 피어 있을테니 서운하게 생각마시라 했다. 비록 작디작은 꽃이지만.
돌단풍은 쌍떡잎식물 범의귀과 여러해살이풀로 보통 충청도 이북에서 자생하지만, 바위 틈에서도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식물답게 전국 어디에 옮겨 심어도 잘 자란다.
바위 곁이나 틈새를 좋아하며 나리꽃을 닮았다해서 바위나리 혹은 돌나리, 이파리가 부채를 닮았다해서 부채손이라는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다. 잎은 단풍잎 모양으로 잎자루가 길며 가을이면 빨갛게 물든다. 돌단풍이라는 이름은 바위를 좋아하며, 단풍나무같은 잎이 달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돌단풍의 학명으로 Aceriphyllum rossii를 쓰거나 일본 식물분류학자인 오이 지사부로(大井 次三郞. 1905~1977)가 1935년에 등록한 Mukdenia rossii를 사용한다. 그는 우리 특산인 누른괭이눈, 쇠치기풀, 올방개, 칡, 겨우살이 등의 학명을 붙이기도 했다.
그가 돌단풍을 발견하고 학계에 새로운 학명으로 보고할 때 아마도 한반도에서는 보지 못하고 만주에서만 발견한 것 같다. 아니면 학명에 한국이 원산지라는 Coreana를 붙여주기 싫어서 그랬는지도.
중국에서는 옛부터 도시명을 지을 때, 강의 북쪽에 자리잡은 도시에는 양(陽), 강의 남쪽 도시에는 음(陰)자를 붙였다. 우리도 그 영향을 받아 한강 북쪽의 도성인 서울의 옛이름이 한양(漢陽)이었던 까닭이다. 밀양(密陽), 함양(咸陽), 안음(安陰) 등의 지명에 양이나 음이 붙은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렇게 만주의 심양(瀋陽)도 심수(瀋水)로 불리던 혼하(渾河)의 북쪽에 자리잡아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만주족은 한자어 대신 '흥성하다'는 뜻의 만주어 '무크덴(Mukden)'으로 불렀다. 오이는 돌단풍을 그곳에서 발견해 만주어 지명을 따서 학명으로 삼은 것이다.

덕수궁 석조전 앞 주목나무와 향나무 밑에 몇 덩이 바위가 있다. 1983년 창경궁을 복원할 때 가져다놓은 정원석이다. 금방 깬 생바위가 아니고 고궁에서 그래도 몇 백년 묵어 기품있는 돌덩이들이다. 주목과 향나무 그늘 밑 바위 틈은 몇 해 전에 이식한 돌단풍의 또 다른 터전이 되어 소담스레 잘 자라고 있다.
관중(管仲, 기원전 725?~기원전 645)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관자(管子) 권수(權修)편에는 인구에 회자되는 구절이 있다.
‘一年之計 莫如樹穀 十年之計 莫如樹木 終身之計 莫如樹人 一樹一穫者穀也 一樹十穫者木也一樹百穫者人也(일년지계 막여수곡 십년지계 막여수목 종신지계 막여수인 일수일확자곡야 일수십확자목야 일수백확자인야)
‘일 년의 계획으로는 곡식을 심는 일만한 것이 없고, 십년의 계획으로는 나무를 심는 일만한 것이 없으며. 평생의 계획으로는 사람을 심는 일만 한 것이 없다. 한번 심어 한번 거두는 것이 곡식이고, 한번 심어 열 번 거두는 것이 나무이며, 한번 심어 백 번 거둘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여기서 '일수백확(一樹百穫)'이란 성어가 유래했다. '한번 심어서 백 배를 거둔다'는 뜻으로, 인재 한 사람을 길러내어 사회에 막대한 공헌을 한다는 비유의 말이다. 이는 관중이 돌단풍과 같은 식물을 관찰하고 얻은 교훈이리라. 그렇게 숭례문의 돌단풍은 남산이나 덕수궁의 수백 개 씨앗 가운데 하나가 바람 타고 갔거나, 동물이나 사람의 몸에 붙어서 퍼진 것이 아닐까.
꽃은 보통 흰색이지만 담홍색을 띠기도 한다. 3~5월에 뿌리줄기에서 바로 나온 꽃자루 위에 원뿔모양의 취산(聚繖)꽃차례로 핀다. 먼저 꽃대 끝에 하나의 꽃이 피고, 그 주위의 가지 끝에 또 꽃이 피며 점차 밑으로 피어가는 꽃모양이다.
꽃자루는 최대 30cm까지 자라며 잎이 달리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잔설이 있는 바위 사이에 돌단풍이 하얗게 피면 또 다른 눈송이를 보는 듯하다. 또한 늦은 봄 깊은 산속에서 흰꽃을 피우는 돌단풍을 보면 얼마나 깨끗하고 대견한지 모르겠다. 꽃을 떨어뜨리고 달걀모양의 열매를 맺는데, 익으면 마치 흥부네 박이 갈라지듯 두 쪽으로 갈라지며 숨겨놓은 금은보화같은 씨앗이 쏟아진다.

돌단풍은 본래 깊고 깊은 산골짜기 신선이었다. 봄이면 양지바른 너럭바위 위에 누워 겨우내 켜켜이 쌓인 온몸의 더께를 덜어내고 있던 신선이었다. 그러다 불현듯 도회지의 사람 냄새가 그리워 잠시 내려온 신선이다. 그러나 이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라도 다시 깊은 산속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신선이다.
'흥진비래(興盡悲來)'라는 말이 있다. '즐거운 일이 지나면 슬픈 일이 닥쳐온다'는 뜻으로 흥망성쇠가 엇바뀌듯 세상일은 순환된다는 것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초당사걸(初唐四傑)’의 한 사람인 왕발(王勃, 647~674)이 지은 등왕각서(滕王閣序)의 ‘天高地逈 覺宇宙之無窮 興盡悲來 識盈虛之有數(천고지형 각우주지무궁 흥진비래 식영허지유수/ 하늘은 높고 땅은 가없이 넓어, 우주의 끝없음을 새삼 깨닫는다, 흥겨움이 다하면 슬픔이 오니, 차고 기울고 성하고 쇠하는 이 모두 하늘의 뜻임을 알겠다)’라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돌단풍은 원래 산속에 살며 빨라야 4월에나 피는데, 도심 한가운데의 열섬인 덕수궁 바위 틈에선 겨울 추위가 채 가시지도 않은 2월말에 꽃대가 올라오기도 한다. 군데군데 아직 눈이 남아있지만, 양지바른 곳에선 고사리처럼 검붉은 꽃대가 올라온다. 보통 깊은 산속의 야생화는 옮겨 심으면 왠만해선 잘 자라지 못하지만 돌단풍은 붙임성이 좋다.
돌단풍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아 간다. 꽃대에 잎이 달리지 않기에 결코 과소비를 하지 않고 절약하며 살려는 곧은 의지가 엿보여 기특하다. 기름진 땅도 많은데 하필이면 물가나 바위 틈을 좋아한다. 이들이라고 기름진 땅, 포근한 땅을 싫어하겠냐마는 척박한 바위 틈새에 뿌리를 내리는 것을 보면 한편으론 대견스럽기까지하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전쟁 중이거나, 왕조나 정권 교체기, 정치•경제의 총체적 난국 등 세상이 어지러울 때 사이비 괴승, 도사, 신선들이 많이 출현했으며 지금도 여전하다. 모처럼 속세에 놀러와 우리들과 기꺼이 어울리며 기쁨을 퍼뜨리고 있는 '찐신선(眞神仙)'인 돌단풍.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그나마 느끼던 '즐거움이 다하여 슬픔을 안고' 다시 깊은 산속으로 돌아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그저 기우(杞憂)이기를 바랄 뿐이다.
|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최근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이야기' 1~9권을 잇따라 펴냈으며 현재 10권을 준비중이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
출처 : 인사이드비나(http://www.insidevi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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