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131) 고주일척(孤注一擲) 위호작창(爲虎作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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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5-02-03 12:24 조회 85 댓글 0본문
- 온힘 다해 마지막 카드 던졌으면 변명 말고 책임을
- 일부 여당중진 행태 ‘자기 잡아먹은 호랑이 앞잡이 노릇’ 하는 꼴


'대한이 소한집에 놀러가서 얼어죽는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번 대한은 봄날씨 같았다. 그러더니 아니나 다를까 봄의 불청객 미세먼지가 며칠동안 하늘을 뿌옇게 뒤덮었다. 이대로 봄이 오는가 싶더니, 아직 때가 아니라는듯 설연휴 동안 한파에 폭설까지 내렸다. 그래도 덕수궁엔 관람객들이 제법 들어와 눈길은 발자국으로 어지럽지만 외진 곳엔 새들의 발자국이 또렷하다.
12•3 비상계엄으로 오리무중 안개 정국이 지속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계엄을 선포했을까. 그의 말대로 거야(巨野)의 횡포에 맞선 국가기능의 정상화, 종북세력의 척결을 위해 마지막 카드를 던진 것일까.
중국에는 도박판에서 쓰는 '고주일척'(孤注一擲)이란 성어가 있다. 이 말은 도박에서 마지막 남은 판돈을 다 걸고 올인한다는 말로, '어떤 일에 온 힘을 기울여 한판 승부를 꾀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북송 황제 진종(眞宗)은 거란족의 요나라와 전쟁에서 연전연패해 궁성이 있는 수도까지 위협받게된다. 그러자 재상 구준(寇準)은 황제가 몸소 전선에 나가서 군대를 지휘하면 병사들의 사기가 올라 승리할 것이라고 간언했다. 황제는 그의 말대로 직접 전장에 나가 요나라의 군대를 물리쳤다. 그후에도 구준이 지휘한 송나라 군사들은 거란족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자 진종은 구준을 더욱 신임하게 됐다.
구준의 정적인 부재상 왕흠약(王欽若)은 황제의 신임을 받는 구준이 눈엣가시였다. 어느날 황제와 주사위놀이를 하게 된 그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해 ‘저번 요나라와의 전쟁에서 구준은 황제를 도박판의 마지막 밑천인 '고주'(孤注)로 삼아 한판을 노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孤注一擲). 황제가 구준의 말만 듣고 몸소 전장에 나간 일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모험이었다’고 참소했다.
그의 말에 혹해 격노한 황제는 구준을 좌천시켜 버렸다. 이 일화는 송사(宋史) 구준전(寇準傳)에 실려있다. 고주일척이란 성어는 당나라 한유의 시에서 유래한 '건곤일척'(乾坤一擲)과 비슷한 말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마지막 카드는 비상계엄밖에 없었을까. 그 전에 야당을 설득하여 협치를 이끌어낼 수는 없었는가. 그런 노력은 전혀없이 자기 기분 내키는대로 밀어부친건 아닌가. 패는 얼마든지 있었으나 노력하지 않은건 아닌가.
계포(季布)는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다툴 때 항우 휘하의 용맹한 장수로 약한 자를 돕고 의로운 행동을 하는 인물로 유명했으며, 자신이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신의있는 사람이었다. 항우와의 전쟁에서 이긴 유방은 천금의 현상금을 걸어 계포를 체포했으나, 그의 성품에 반해 중책을 맡기게 된다.
그후 항간에는 ‘得黃金百斤 不如季布一諾’ (득황금백근 불여계포일락, 황금 백 근을 얻는 것은 계포의 한 마디 대답을 받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이 일화에서 '계포일락'(季布一諾)이란 성어가 유래했다. '계포가 한번 약속한 것은 끝까지 지킨다'는 뜻으로 '일낙천금'(一諾千金)이라고도 하는데, 사기(史記) 계포난포열전(季布欒布列傳)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를 줄여 '계락'(季諾) 또는 '금락'(金諾)이라고도 한다.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지 나흘 만인 12월7일 대국민담화에서, 법적•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불과 5일후, 야당의 방탄탄핵, 공직기강과 법질서 붕괴, 정치선동 공세, 부정선거 등의 핑계를 대며 탄핵하든 수사하든 국민과 함께 싸우겠다며 처음 국민과의 약속을 뒤집었다.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던 국민과 함께 싸우겠다는 국민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인가.
윤 대통령이 앉는 집무실 책상머리에는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라는 문구가 쓰인 명패가 놓여있다. 2023년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 때 선물한 것으로, 제33대 대통령인 해리 트루먼이 대통령의 결정과 그에 따르는 책임의 무게를 잊지 않기 위해 백악관 웨스트윙 집무실 책상에 놓아두었던 것을 복제한 것이다.
The buck stops here라는 말은 '책임을 전가하다'라는 뜻인 'Pass the buck'과 대구(對句)를 이룬다. 미국 개척시대 포커게임에서는 카드를 돌리는 딜러 앞에 사슴뿔(buckhorn)로 만든 나이프를 뒀다고 한다. 이것을 간단히 벅(buck)이라 하며, 딜러를 하고싶지 않으면 'Pass the buck'이란 말과 함께 벅을 옆사람에게 넘기면 된다.
야당의 횡포와 극정농단에 경각심을 주기위해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윤 대통령의 말 때문인지 국민들에게도 경각심을 주기위한 '계몽령'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지금이 유럽의 17세기 계몽시대, 구한말 일제강점기도 아니고 이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윤 대통령의 변호인들과 여당 중진 및 일부 정부요직 인사들은 이번 계엄령은 피를 흘리지 않았으니 내란이 아니고 헌법상 대통령의 통치행위라고 강변하고 있다. 아직도 그의 '격노'에 꼬리를 내리며 비위를 맞추고 있는 꼴이다.
중국 전설에 따르면 호랑이에게 잡혀 먹힌 사람은 혼이 떠나지 못하고 호랑이의 노예인 창귀(倀鬼)가 되어 호랑이가 먹이를 구하러 갈 때 길을 안내한다고 한다. 이 일화에서 자기를 잡아먹은 호랑이를 돕는 창귀처럼 악인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것을 비유해 '위호작창'(爲虎作倀)이란 성어가 유래했다. 송나라 이방(李昉, 925~996)의 태평광기(太平廣記) 등에 실려있는 이 말은 폭군인 주왕(紂王)을 도와 포학한 짓을 저지른다는 '조주위학'(助紂爲虐)이란 성어와 같은 뜻이다.
변호인들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윤 대통령을 옹호하는 여당 중진 등의 행태는 위호작창, 조주위학 성어를 떠올리게 만든다. 역사라는 기록에 찍힌 사람들의 발자국은 눈밭의 새 발자국과는 달리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
|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최근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이야기' 1~9권을 잇따라 펴냈으며 현재 10권을 준비중이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
출처 : 인사이드비나(http://www.insidevi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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