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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136)오유지족(吾唯知足) 안빈낙도(安貧樂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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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5-04-28 12:11 조회 7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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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가진 것, 처한 상황에 만족하고 사는 것
- 가난하더라도 마음 편히 하고 도를 즐기는게 '행복'
일본 교토 료안지(龍安寺)의 '吾唯知足'(오유지족) 쓰쿠바이(蹲踞, 윗사진)와 곡천(谷泉) 김수일의 작품 '吾唯知足'(오유지족).  '나는 오직 만족함을 안다'는 말로 내가 가진 것, 내한 처한 상황에 만족하며 살라는 의미이다. (사진=인터넷 캡쳐/ 이형로)

30여년 전 일본에서 공부한다고 몇년 머문 적이 있다. 유학생은 아이를 낳으면 출산비가 무료라 해서 둘째까지 낳으며, 공부하랴 먹고 살랴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는 바쁜 나날이었다. 

벚꽃이 필 무렵 장인•장모님이 오셔서 교토의 돌정원(石庭 이시니와)으로 유명한 료안지(龍安寺)에 모시고 간 적이 있었다. 일찌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1975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다녀가서인지 오전인데도 서양인들이 꽤 있었다.  

일반 정원과 같은 풀과 나무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모래 위에 자갈과 돌덩이만으로 이루어진 가레산스이(枯山水)정원. 그 앞 툇마루에는 이미 관람객으로 만원이었다. 모두 선승(禪僧)이 되어 깊은 사색에 잠긴 모습이 그럴 듯했다. 

필자도 자리를 잡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왜 이국땅 일본에 와 있는가. 공부를 하기 위해선가, 아니면 먹고 살기 위해서인가. 당시에는 공부하며 생활비까지 벌어야 한다는 어려움에 대한 불만뿐이었다. 스스로 택한 길이었는데도 말이다. 

공연히 죄없는 모래와 돌에 한 차례 신세타령을 한 후 방장실 뒤쪽으로 가봤다. 일본에서는 '쓰쿠바이(蹲踞)'라 하는 큰 엽전 모양의 석조가 눈에 띄었다. 낮은 위치에 있어 손을 씻거나 할 때, 문자그대로 몸을 웅크려야 하기 때문에 저절로 겸손하게 경의를 표하는 자세가 된다. 

허리를 굽혀 땀에 젖은 손과 얼굴을 씻는데 수조 주변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한자(漢字)는 한잔데 뜻이 통하지 않는 글귀였다. 이리저리 조합해보다, 갑자기 머리가 환해지는 것이 아닌가. 

중간에 물이 고이는 '입 구(口)'자 모양의 수조를 이용해 상하좌우로 글자를 만든 것이었다. 위에는 '五(오)', 오른쪽에는 '隹(추)', 왼쪽에는 '矢(시)'. 아래쪽에는 '止(지)'자가 있다. 조합하면, '吾唯知足(오유지족)'이란 구절이 되니, 직역하면 '나는 오직 만족함을 안다'라는 뜻이다. 과하지 않게 내가 가진 것,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만족을 하며 살라는 의미가 아닌가.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吾唯知足을 중국인은 唯吾知足으로, 일본인은 吾唯足知로 읽는 사람들이 많다. 언어 습관에 의한 어순의 차이일뿐 그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중국은 한(漢)나라 때부터 민간에서 엽전 장식품이 유행했다. 시중에서 유통되는 화폐가 아니라 화전(花錢) 또는 압승전(壓勝錢)이라 불리는 것으로, 기복•축복•벽사(辟邪)를 위한 부적 혹은 악세서리 등으로 만든 것이다. 다양한 모양과 크기로 만들어졌으며, 그중 장수나 부귀 혹은 장원급제 등을 새긴 '길어전(吉語錢)'이 가장 인기였다. 

이것이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 1392~1467) 말기에 일본으로 전해져 '에센(絵銭)' 또는 '가센(画銭)'으로 불리게 된다. 초기에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민속적인 장식용이었으나, 후에 승려에게 축복이나 보호를 요청하는 글자를 새긴 화폐 부적으로 더욱 유행했다. 특히 1736~1740년 도쿠가와 막부시대에 주조된 화폐 부적은 일본의 유학승들에 의해 중국에 역유입되기도 했다. 

가진 것 없더라도 마음을 편히 해 도를 즐기며 만족하는 것이 행복일 것이다. (사진=인터넷 캡쳐/ 이형로)

중국의 불교전래는 서한(西漢)의 무제(武帝, 기원전 156~기원전 87)에 의해 실크로드와 초원의 길이 개척됨으로서 서역과의 교역이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유입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불교가 중국인, 특히 황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동한(東漢)시대에 이르러서다. 

중국 황실이 불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까닭은 바로 새로운 통치사상이 필요해서다. 진(秦)나라의 법가, 서한 초의 도가와 유학이 모두 통치이념으로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위• 촉•오 삼국의 군주들도 새로운 통치이념을 찾으려 했고, 손권과 조조는 불교를 통해 새로운 통치이념을 정립하고자 했다. 

그러나 삼국을 통일한 서진(西晉)은 다시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채택하지만, 결국 북방을 소수민족들에게 내어주고 동진•십육국•남북조시대에 진입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불교가 이미 일반민중에 널리 전파됐고, 또한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했던 서진의 실패를 바탕으로 한족의 남방이나 소수민족을 지배층으로 하는 북방은 모두 불교를 통치이념으로 채택하게 된다. 

402년 후진(後秦) 황제 요흥(姚興)은 신장의 승려 구마라습(鳩摩羅什, 344~413)의 뛰어난 재능과 학문적 소질을 높이 평가해 장안으로 초청한다. 그는 국사가 되어 열정적으로 반야바라밀다심경•반야경•법화경•유마경•아미타경 등 주요 대승경전을 번역한다. 

그중에는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기 전에 유언처럼 설법한 '불유교경(佛遺敎經)'도 포함돼 있다. 이 경에는 "不知足者 雖富而貧 知足知人 雖貧而富(부지족자 수부이빈 지족지인 수빈이부.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록 부유해도 가난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해도 부유하다)."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오유지족(吾唯知足)'이란 성어가 유래됐다고 한다. 

그러나 공자와 맹자도 '가난하더라도 마음을 편히 하고 걱정말고 도를 즐기라'는 '안빈낙도(安貧樂道)'와 '자신의 분수를 알고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을 강조하고 있다.(2019.10.27. 2회 칼럼 참조) 

또한 노자도 도덕경에서 '知足者富'(지족자부, 만족함을 아는 사람은 부유하다. 33장), '知止不殆'(지지불태, 적당할 때 그칠 줄 알면 위태로움을 당하지 않는다. 44장)'라며, 만족할 줄 알아야 늘 즐겁다는 '지족상락(知足常樂)'을 강조하고 있다.(2021.08.09. 50회 칼럼 참조) 

이런 좋은 가르침을 불가나 유가 혹은 도가에서만 강조하고 권할 리가 없다. 이 세상에 우리에게 욕심부리며 살라고 하는 종교나 사상은 없다. 오유지족이란 그저 우리가 살아가며 새겨볼만한 좋은 '격언'이라 생각하면 될 일이다. 

몇년 전 교토에 여행가서 료안지의 오유지족 쓰쿠바이를 다시 찾은 적이 있었다. 예전보다 물이끼가 더해져 더욱 고풍스러워진 것 이외에는 변한 게 없었다. 다만 변한 것이 있다면, 그때 그것을 대하는 필자의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 졌다는 것이다. 

불유구(不踰矩)의 나이가 되니, 젊었을 때의 조급함이나 매사에 만족하지 못하던 꺼풀을 벗고, 바쁜 일상생활에서도 제법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됐다. 권력이나 금력으로 떵떵거리며 위세를 부리던 사람이나 필자와 같은 평범한 사람도 죽으면 결국 좁은 관 속으로 들어가는건 마찬가지이니 아등바등할게 무어 있겠는가. 

돌이켜 보니,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얻지 못한 것(得不到)'이나 '잃어버린 것(已失去)'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붙잡을 수 있는 자그마한 '행복'이란 생각이다. 그래야 우리는 늘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최근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이야기' 1~9권을 잇따라 펴냈으며 현재 10권을 준비중이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출처 : 인사이드비나(http://www.insidevi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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