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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140) 천생연분(天生緣分) 천작지합(天作之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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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5-07-07 16:24 조회 5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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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작지합(天作之合)은 비비추의 꽃말처럼 하늘이 내린 인연, 즉 하늘이 맺어준 짝이란 뜻이다. 운명 같은 그런 인연을 너무 쉽게 끊는 요즘 세태가 안타깝다. (사진=인터넷 캡처/이형로)
천작지합(天作之合)은 비비추의 꽃말처럼 하늘이 내린 인연, 즉 하늘이 맺어준 짝이란 뜻이다. 운명 같은 그런 인연을 너무 쉽게 끊는 요즘 세태가 안타깝다. (사진=인터넷 캡처/이형로)

장마가 시작하는거 같더니, 서울은 비 몇번 내리곤 찌는 듯한 무더위다. 이런 와중에도 비비추는 이제 제철이라며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비비추는 봄에 나무 그늘에서 반짝이는 잎으로 지면을 덮다가 여름이면 하늘을 향해 꽃대를 올린다. 그 가는 장대에 꽃송이가 줄줄이 벙글기를 기다리다 차례가 되면 작은 나팔 같은 보라색 꽃을 피운다. 

우리나라에는 비비추 외에 일월비비추, 좀비비추, 흑산도비비추 등이 자생한다. 이런 비비추속을 통틀어 '호스타(Hosta)'라고 하는데 원래 동아시아에 35종류가 자생하는 특산이었다. 이를 유럽에서는 1900년대부터 육종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2500종류가 넘는 세계적인 정원식물이 되었다. 

비비추는 흰꽃이 여인네의 비녀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옥잠화(玉簪花)와 비슷하지만, 연보라색 꽃을 피워 자옥잠(紫玉簪)이라고도 한다. 비비추라는 이름은 새잎을 나물로 무칠 때 거품이 일 때까지 '비벼서' 먹는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하며, 새순이 나올 때 잎이 '비비' 꼬여서 나온다 하여 붙였다고도 전해진다. 여기에 곰취처럼 나물의 뜻인 '취' 또는 '채'와 같은 접미사가 '추'로 변해서 '비비추'라 한다는 것이다. 

비비추의 꽃말은 '하늘이 내린 인연' 즉 '천생연분'(天生緣分)이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이 아름다운 꽃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명절 때면 우리집에 인사차 들리던 옥이 이모 부부가 있었다. 옥이 이모는 시골 외가의 머슴이던 김씨의 딸이다. 김씨는 어릴 때 전염병으로 한쪽 눈을 잃었으며, 어른들은 애꾸눈 김씨, 우리들은 애꾸 아재라 불렀다. 

옥이 이모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애꾸 아재가 어려서부터 키웠다. 필자가 어렸을 땐 이미 막내 이모쯤 되는 그런 나이든 처녀였다. 우리집은 필자가 두살 때 서울로 이사오면서 먼 친척인 만석이 아재가 시골집을 관리하며 농사짓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심부름으로 양가를 서로 오가며 자연스레 친해졌고, 좀 커서는 동네 야학에서 함께 공부도 하면서 애틋한 사랑을 키우다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가 되었다. 

늘 명랑하던 옥이 이모가 어느 해 초여름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만석이 아재는 누구에게 들었는지 월남(베트남) 갔다오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며칠 전 자원입대하여 월남에 갔다. 뒷뜰에 연보라색 비비추꽂이 피고 있을 때였다. 

아재는 옥이 이모 머리에 비비추꽃을 꽂아 주며, 꽃이 세번 피고 지면 돌아오겠노라 약속했었단다. 아, 그래서 옥이 이모는 뒷뜰의 비비추를 정성껏 돌보고 있었구나! 

이듬해 애꾸 아재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자, 어머니는 옥이 이모를 우리집으로 데려왔다. 식구가 많은 서울집에서 시집가기 전까지 가사도우미를 하면, 충분한 결혼자금을 대준다는 조건이었다. 

옥이 이모가 열심히 가꾼 덕분에 여름이면 우리집 꽃밭에도 비비추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비비추가 세번째 필 무렵 옥이 이모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만석이 아재 전사통지서였다. 

며칠 후 방에서 나온 옥이 이모는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었다. 달덩이처럼 뽀얗던 얼굴은 반쪽이 되고 창백한 모습이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얼마 후 몸을 추스려 예전처럼 예쁜 얼굴이 될 무렵, 이모는 우리집을 나가서 독립하겠다고 했다. 어른들이 극구 말렸지만, 나중에 자리잡으면 연락을 하겠다며 떠나갔다. 

옥이 이모가 나간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저녁, 아버지는 뜻밖의 소식을 가져오셨다. 동명이인이 전사한걸 행정착오로 전사통지서가 엉뚱하게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중국 속담 ‘千里姻緣一線牽'(천리인연일선견)은 천리나 떨어져있어도 부부의 인연은 한줄기 끈으로 연결돼있다는 말로, 부부는 하늘이 맺어준 짝을 의미한다. (사진=인터넷 캡처/이형로) 
중국 속담 ‘千里姻緣一線牽'(천리인연일선견)은 천리나 떨어져있어도 부부의 인연은 한줄기 끈으로 연결돼있다는 말로, 부부는 하늘이 맺어준 짝을 의미한다. (사진=인터넷 캡처/이형로) 

우리는 기뻐하는 한편 안타까워했다. 자리잡으면 연락하겠다는 이모는 그때까지 감감무소식이었기 때문이다. 가수 김추자가 부른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란 노래가 한창 유행할 때, 만석이 아재도 '새까만 최상사'가 되어 돌아왔다.  

만석이 아재는 옥이 이모를 백방으로 찾아다녔으나 헛수고였다. 얼마후 그는 전역해서 수원에 정육점을 차려 제법 돈을 벌게 되었다. 직원까지 고용해서 주변은 물론 관공서 식당에도 납품할 정도로 번창했다. 

비비추가 한두 송이 피기 시작하던 어느 여름날. 만석이 아재네 가게 식구들은 오랫만에 회식을 하기로 했다. 이왕이면 아재네 가게 고기를 사다 쓰는 식당으로 가자는 직원의 말에 수원 시내의 제법 규모가 있는 갈비집으로 가게 되었다. 

식당으로 들어가던 만석이 아재는 갑자기 돌장승이 되어 버렸다. 문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카운터에 앉아 계산하고 있는 아주머니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옷깃에는 자수정으로 만든 비비추꽃 브로치가 꽂혀 있었다. 

이미 마흔살을 훌쩍 넘긴 두 사람은 그해 비비추꽃이 지기 전에 결혼을 해야한다며 서둘렀다. 가까운 일가친척이 없는 두 사람이었지만, 우리 모두의 축복 속에 행복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날 신부는 비비추꽃 부케를 들었다. 

그동안 만석이 아재는 인연이 된다면 언젠가는 만나리라는 희망의 끈을 버리지 않고 기다렸단다. 옥이 이모도 주위에서 아무리 좋은 조건의 남자를 소개받아도 상대방이 도대체 눈에 들어오지 않더란다. '일편단심'(一片丹心)이란 말은 바로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리라. 

당나라 때 위고라는 젊은이가 여행 중에 '달빛 아래에서 한 노인‘(月下老人 월하노인)이 '두꺼운 책’(婚譜)을 뒤적이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 물었더니, 노인은 '붉은 실'(赤繩)이 가득 든 보따리를 보여주며, 세상 사람들의 혼처를 알아보고 맺어준다고 한다. 

붉은 실을 한번 묶어 놓으면 아무리 멀리 있고 세월이 흘러도 반드시 부부로 맺어진다는 것이다. 위고가 혹시나 해서 자신의 짝은 어디 있는지 묻자, 북쪽 성 아래 채소를 파는 노파가 안고 있는 젖먹이 계집아이가 짝이라 하였다. 위고는 실없는 늙은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자리를 떠났다. 

14년 후 관리가 된 위고는 태수의 딸과 결혼하게 됐고, 그녀의 자라온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녀가 원래 채소장수 할멈에게서 크다가 태수의 양녀가 되었다는 것인데, 월하노인의 말그대로였다. 당나라 이복언(李復言, 775~ 833)의 '속현괴록 정혼점'(續玄怪錄 定婚店)에 나오는 고사다. 

하늘이 내린 인연 즉 천생연분은 '하늘이 맺어준 짝'이란 뜻으로 '천작지합'(天作之合)이라고도 한다. 주나라 문왕과 그의 처 태사(太姒)와의 혼인을 칭송한 표현으로 시경 대아•대명(大雅•大明)에 실려있다. 

중국 속담에 '천리나 멀리 떨어져 있어도 부부의 인연은 한 줄기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千里姻緣一線牽 천리인연일선견)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인연이 있으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만나게 되고, 인연이 없다면 바로 코앞에 있어도 만나지 못한다'(有緣千里能相會 無緣對面不相逢 유연천리능상회 무연대면불상봉)라는 말도 있다. 

이렇게 질기디 질긴 인연의 끈을 요즘은 너무 쉽게 끊는것 같다. 각자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월하노인의 '붉은 실의 효험'이 세월과 더불어 떨어지지 않았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이형로는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대만대학 철학연구소와 교토대학 중국철학연구소에서 수학 후 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현재 덕수궁에서 근무하며 스스로를 '덕수궁 궁지기'라고 부른다. 저서로는 ‘궁지기가 들려주는 덕수궁 스토리’, ‘똥고집 궁지기가 들려주는 이야기’(2018년)에 이어 최근 ‘궁지기가 들려주는 꽃*나무의 별난이야기' 1~9권을 잇따라 펴냈으며 현재 10권을 준비중이다. 구산스님께 받은 '영봉(0峰)'과 미당 서정주 선생께 받은 '한골', 그리고 스스로 지은 '허우적(虛又寂)'이란 별명을 쓰고 있다.

 



출처 : 인사이드비나(http://www.insidevi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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